깃羽 news

“자유로운 깃의 비행, 생명의 본질을 찾는다” 한국화가 조미영

eggy 2010. 1. 24. 19:19

“자유로운 깃의 비행, 생명의 본질을 찾는다”
한국화가 조미영
2010년 01월 24일 (일) 12:05:17 연세영 문화부장 pakos@hanmail.net

이 작가를 주목한다

깃 그리는 한국화가 조미영

그 흔한 TV가 없다. 푹신한 소파는 아예 갖다두지 않았다. 작업실은 온전히 불편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불편함을 작업의 열정으로 바꾼다. 고독하고 춥고 외로운 시간들이 모여 제 살 같은 작품이 탄생된다. 작품 ‘무정란’에 이은 ‘깃’ 시리즈는 그녀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다. 낙하하는 것들에 대한 생명의 본질을 깃으로부터 찾고 있는 것이다. 깃 그리는 화가 조미영을 조명했다. <편집자 주>

   
▲ 작가 조미영은 흩날리는 깃털의 움직임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본다. 공간속 여백을 통해 삶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투영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그녀는 어김없이 서실을 찾는다. 단구 장남혁 스승이 가르치는 곳이다. 햇수로 10년 째.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라 슬렁슬렁 다닐 수 있겠지만 그녀는 늘 스승 앞에서 긴장한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모습이 진지하다.

한국화에 곁들이는 부차적인 공부가 아닌 수련이다. 마음을 닦기위한 기본기인 셈이다. 서예시간에 단구 스승은 글씨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론과 글 모양, 글쓴이의 정서와 사상을 그녀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배운 지필묵의 기운은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되고 이입된다. 작품 '깃'이 손재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그녀가 최근까지 작업하고 있는 깃 시리즈는 명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깊은 사유를 통해 온전한 본질을 찾고 있다. 그런 내면의 묵상 때문인지 작업을 할때는 혼자다. 작업이 타협의 대상이 될수도 없으려니와 공유할 수도 없는 작가 본연의 태생인 것이다.

“최근 저의 작업은 정제시키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표현하려 하는 것에서 본질을 끌어내어 가장 간소하게 절제하는 표현들을 선으로 그립니다. 제 흥에 겨워 쓰던 갈필, 발묵 대신 정교하고 유연한 가는 필선에 나의 감정들을 이입시킵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명상과 사유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가장 최근의 작업들은 미묘한 압력의 차이나 흐름에 의한 공기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깃털'입니다. '존재의 가벼움은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 한다'는 진리와 생명이 있기에 에너지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발전을 위한 배반의 시기가 자연 안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필요하다는 것, 작업을 하면서 얻는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홍익대 미대 강의와 국립중앙박물관 강의가 마치면 그녀는 대부분 작업실에서 지낸다. 유리병 속에 넣어둔 깃을 연구하고 날려보고 세필로 그리고 매만진다. 일본과 외국을 다니며 모아온 향초는 작품을 몰두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업량이 모자란다 싶으면 산을 오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개의치 않는다.

최근엔 몇년 전부터 풍광을 담은 스케치북을 잃어버려 마음이 아팠지만 슬기롭게 이겨냈다. 누군가 산에 떨어진 스케치북을 가져갔을 텐데 자신의 작품을 보고 감흥에 젖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곁에서 사라지기 전에 애정을 갖고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도 배웠다. 그녀가 매달리고 있는 '깃' 시리즈는 자유롭게 떨어지는 깃으로부터 생명의 본질을 찾는 작업이다.

   
▲ 깃이 품고있는 것은 숨이다. 우주와 진리를 품는 넓은 품과 같다. 숨을 담는 그릇은 다시 깃으로 환원된다. 깃이 숨이자 숨이 깃인 것이다. 깃羽 품다 53x49cm 먹, 한지 2008

깃의 주변에 날아가는 이름없는 새, 푸른 숲을 연상하는 저녁하늘, 땅과 바다의 접점인 수평선은 끝이 없다. 발묵의 번짐은 상처를 보듬는 보드라운 엄마 품 같다. 고된 삶의 흔적을 지우는 지우개 역할도 한다.

“삶의 흔적이 바람처럼 나부끼며 흔들어 쓰러져도 이미 내 몸 안에는 태(胎), 곧 난막(卵膜)태반(胎盤) 탯줄을 통해 지금 나를 살게 할 소중한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림을 완성해가며 태점(胎占)을 찍듯, 비록 '예기치 않게 일어난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필연적으로 ‘그러한’ 자리를 향하여 뻗게 됩니다.

하늘의 기운, 즉 우주의 숨결을 받아 대자연에서 노닐며 몸과 마음을 닦음으로, 내면의 본성에 보다 더 충실하게 인간의 숲속, 옛 그림 속, 어린 날 기억 속. 그 어떤 상상의 자리에서도 스스로 즐거이 우연偶然 아닌 우연羽 然. 날개 짓으로 머물게 해보는 것이 제 작품의 주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에 대해 박준헌 미술이론가는 "작가 조미영은 현대의 질병을 영적으로 치유하는, 혹은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잃어버린 감수성을 끌어올리는 주술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이 실재라고 강요하지 않고, 미술이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드러내고 언어의 논리에 중독되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비감 어린 시도, 그 자체라는 얘기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하다. 복잡하지 않다. 화면에 많은 사물을 그려넣으려 하지도 않는다. 푸른 하늘과 바다. 깃이 노니는 바람결과 새가 전부다. 그러나 하늘과 땅 사이를 침묵케 하는 여백은 바삐 걸어갈 생각을 단숨에 머물게 한다.

“깃(羽) 작업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리가 붕괴되고 아파트가 붕괴되는 것을 우연으로 볼 수 없듯 시작과 끝이 항상 같이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과거의 그림이 그러했고 지금 현대작가의 작품도 아이들이 성장해서 그려낼 미래의 그림 속에도  우리가 잘 아는 노래가 있습니다.

매번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 시원한 나무 그늘 속 한가로운 친구들, 넉넉한 산자락의 풍경들, 작은 들꽃과 풀벌레가 그것입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림 속 얘기를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은 내 그림 속 ‘깃羽’이 가야할 자리를 더듬어 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내 눈 속에서 마음 속 에서 지워지지 않고 필연적으로'그려야만 한다' 고 외치는 형상 속에 부유하고 있는 상념들을 편안히 지우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그려야만 하는 것이지요.

일체의 전제가 없었지만 더욱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내게 말 걸어온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면 승산도 확신도 없는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지만 마치 우연(偶然)처럼 기대를 걸면서 작업했습니다. 새해는 작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전에 긴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작업실에서 나와 내 자신을 먼저 헤아리는 일. 그것도 내가 보듬고 있는 깃털을 다듬는 작업의 일환이 될 테니까요”

조미영의 작품은 그녀의 작업 홈피( www.chomiyoung.com)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연세영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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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 작가 프로필

1995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1998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1999 無精卵 제1회 개인전(덕원갤러리,서울) 2001 돌·盲·인 제2회 개인전(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 2001 제3회 이태리 피렌체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 (포덴차 디바소성, 이태리, 피렌체 시) 2003 ‘숨’ 제 3회 개인전(김옥길기념관,서울) 2005 우화(羽化) 제4회 개인전(한전프라자갤러리 서울) 2008 깃(wing)전 (게이트갤러리) 이외 개인전, 그룹전 다수. 홍익대, 국립중앙박물관 강의.